Summary

  • 2024년 창업 대비 폐업률은 85.2%로 사상 최고치인데 핵심 상권 공실률은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 자본이 얇은 영세 사업자가 빠진 자리를 디지털·자본을 갖춘 기업형이 빠르게 덮기 때문이다.
  • 거리의 평온함은 경기 회복의 신호가 아니라, 다음 차례를 묻는 교체의 흔적이다.

한국의 자영업 폐업률이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2024년 폐업자 수는 92만 5천 명, 창업 대비 폐업률은 85.2%에 이른다. 코로나19 한복판이던 2020년의 60.6%와 견주면 불과 4년 만에 가파르게 치솟은 숫자다. 그런데 막상 번화가나 동네 상권을 걸어 보면 빈 가게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통계는 최악인데 거리는 멀쩡해 보인다. 이 간극에 한 시대의 진실이 숨어 있다.

빈자리는 비어 있지 않다

폐업이 사상 최고치인데 공실이 눈에 안 띄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 나간 자리를 곧바로 다른 누군가가 채우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가는 쪽과 들어오는 쪽이 전혀 다른 종(種)이라는 데 있다.

나가는 쪽은 대체로 자본이 얇은 개인 영세 사업자다. 은퇴 후 진입장벽이 낮은 음식·소매업에 뛰어들었다가 모아둔 자산을 까먹고 부채만 남기는 경우가 많다. 60세 이상이 개인사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18.4%에서 2024년 32.9%로 뛰었다.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밀려난다.

그 빈자리에 들어오는 쪽은 자본력과 시스템을 갖춘 기업형 점포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본사 차원에서 엄선해 출점하므로, 애초에 유동 인구와 접근성이 좋은 목이 그들 손에 넘어간다. 그래서 핵심 상권의 공실률은 폐업률만큼 오르지 않는다. 같은 거리에서 간판만 조용히 바뀔 뿐이다.

통계가 가린 교체의 현장

여기서 통념 하나가 깨진다. "거리가 멀쩡하니 경기는 그럭저럭 돌아간다"는 인상은 착시다. 거리가 멀쩡한 것은 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무너진 자리를 더 강한 자본이 빠르게 덮었기 때문이다. 폐업률과 공실률이 따로 노는 이 어긋남이야말로 지금 시장의 성격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다.

이 교체에는 방향이 있다. 디지털을 다루는 쪽이 못 다루는 쪽의 자리를 가져간다. 온라인 플랫폼을 쓰는 사업자의 평균 매출은 안 쓰는 쪽의 1.85배에서 2.98배에 이른다. 음식·주점업에서 20~30대 사업자의 디지털 도입률은 40%인데 60대 이상은 8% 안팎에 그친다. 같은 업종, 같은 거리에서도 도구를 쥔 쪽과 못 쥔 쪽의 매출이 두세 배로 갈린다.

그러니 폐업률 숫자만 보고 "장사가 안 된다"로 읽으면 절반만 읽은 것이다. 정확히는 "어떤 방식의 장사가 안 된다"가 맞다. 시장 전체가 쪼그라드는 게 아니라, 시장 안에서 자리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어느 쪽 흐름에 서 있는가

구분 밀려나는 자리 채우는 자리
자본 얇은 개인 자금 본사·법인 자본
도구 대면·수기 중심 데이터·플랫폼
입지 조건 불리한 목 엄선된 목
결과 자산 소진·부채 자리 선점

표의 왼쪽과 오른쪽을 가르는 것은 업종도, 노력의 양도 아니다. 자본과 도구다. 노력은 양쪽 모두 똑같이 쏟는다. 다만 같은 노력이 어느 쪽 구조에 얹히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릴 뿐이다.

Business Value 폐업률이라는 표면 숫자 대신 그 아래 '교체'의 방향을 읽으면, 자기 자리가 밀려나는 칸에 있는지 채우는 칸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판단 하나가 다음 한 해에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 ― 자본을 아낄지, 도구를 갖출지, 자리를 옮길지 ― 를 정한다. 시간과 돈을 어디에 걸지를 거리의 평온함이 아니라 구조의 방향에 근거해 정하는 것, 그것이 이 글이 건네는 값이다.

멀쩡한 거리가 던지는 질문

폐업률이 사상 최고인데 거리가 멀쩡하다는 사실은 위안이 아니라 경고다. 그 멀쩡함은 무너진 자리를 더 강한 쪽이 덮은 흔적이고,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를 묻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 자리가 '밀려나는 칸'인지 '채우는 칸'인지부터 가늠해야 한다. 거리의 평온함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